작년 겨울 첫 상담으로 시작된 이번 프로젝트는 기업체 옥상정원에 화장실을 설치하기 위한 실제 시공 사례입니다. 우수관과 오수관 분리, 건축사 인허가 검토, 2월 중순 배관·급수라인 선시공, 육상 모듈 제작, 크레인 상부 반입, 동파방지 설계까지 반영해 총 4개월 만에 완성되었습니다.
도시의 가장 높은 정원에 화장실을 올리기까지
작년 겨울 첫 상담부터 4개월, 마이펌프 시공자인 내가 본 완성의 기억들
작년 겨울이었다.
정확히는 2025년 12월 초, 아침 공기가 금속처럼 차갑게 굳어 있던 날이었다. 작업장 셔터 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바닥에 놓인 비닐 포장재를 가볍게 흔들고 있었고, 내 손에는 방금 전까지 만지던 공구의 냉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장갑을 벗자 손끝이 잠깐 얼얼했다. 그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는 한 기업체의 경영기획실 팀장이었다.
목소리는 정리되어 있었지만, 그런 목소리일수록 오히려 답답함이 오래 눌려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현장은 늘 말의 내용보다 숨 쉬는 간격, 멈추는 타이밍, 조심스레 고르는 단어 사이에서 먼저 드러난다. 그는 사옥 옥상정원을 이야기했다. 잘 꾸며진 공간인데, 정작 사람들이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는 것. 점심시간에 잠깐 올라와 바람만 쐬고 다시 내려가고, 외부 손님이 왔을 때도 대화를 길게 이어가기 어렵고, 사내 행사도 어딘가 반쪽짜리로 끝난다는 것.
그러다 잠시 뜸을 들인 뒤 본론을 꺼냈다.
“옥상에 화장실을 설치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더군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거의 반사적으로 몇 가지를 머릿속에 펼쳐 보았다.
옥상 화장실.
말로 하면 짧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늘 네 가지가 한꺼번에 따라붙는다.
배수, 구조, 동파, 인허가.
그중 하나라도 가볍게 보면 나중에 반드시 값을 치른다.
며칠 뒤 현장을 처음 찾았을 때도 계절은 여전히 겨울 쪽에 발을 깊게 담그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차갑게 식은 콘크리트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옥상문을 여는 순간 건조한 바람이 얼굴을 먼저 쓸고 지나갔다.
낮은 겨울 해가 맞은편 빌딩 유리창에서 한 번 튕겨 올라와 옥상 가장자리에 희끄무레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옥상정원에 올라서자, 나는 그 공간이 꽤 잘 만들어졌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식재 박스의 높이는 과하지 않았고, 휴게 테이블은 시야를 막지 않을 만큼 적당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바닥 데크는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게 정리돼 있었고, 식물들은 겨울이라 잎을 많이 떨군 상태였지만 뼈대만으로도 이 공간이 계절을 잘 견디도록 계획되었다는 인상을 주었다.
도시 한복판의 사옥 옥상인데도, 그곳에는 잠시 마음을 늦출 수 있는 작은 정원의 표정이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바람 소리를 들었다.
이런 공간은 사진으로는 완벽해 보인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면, 대체로 이유는 하나다.
아름다움은 있는데, 체류를 완성하는 기능이 비어 있는 것.
경영기획실 팀장은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은 채 나를 옥상 끝단 모서리 쪽으로 데려갔다.
구두 바닥이 데크 위를 지날 때마다 마른 소리가 짧게 났다.
“저희가 화장실 위치를 처음엔 여기로 잡았습니다.”
그가 가리킨 곳은 주 휴게 공간과 적당히 떨어져 있었다.
조경 분위기를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도 접근은 가능한 위치였다. 그리고 그 구역 바닥에는 길게 형성된 트렌치가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해할만한 형태의 배수구 였다.
이미 물길처럼 보이는 구조가 있으니, 배수 문제도 어느 정도 풀린 듯 보였기 때문이다.
팀장은 조금 머쓱하게 웃으며 그때의 판단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이 트렌치만 보고 여기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수 라인이 이미 있으니까요.”
나는 말없이 그 트렌치를 내려다보았다.
현장에서 내가 가장 경계하는 순간은 모든 게 언뜻 쉬워 보일 때다.
물길처럼 보이는 것과 실제로 화장실 배수에 쓸 수 있는 라인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나는 몸을 조금 숙여 트렌치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짚고 물었다.
“이 라인, 우수입니까? 오수입니까?”
그 질문을 듣는 순간 팀장의 얼굴이 아주 조금 굳었다.
현장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생소한 질문일 수 있다.
배수는 그저 배수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공자에게는 그 차이가 전부다.
비가 내려 흐르는 물과 사람이 사용해 흘려보내는 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
확인 결과, 예상대로 그 트렌치는 우수관로였다.
옥상에 내리는 빗물을 모아 보내는 길.
즉, 화장실에서 나오는 생활오수를 연결할 수 있는 라인이 아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우수는 우수대로 살아 있어야 하고, 오수는 반드시 별도의 배수계획으로 가야 한다고.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물길 같아도, 그 안에 흐르는 개념부터 다르다고. 팀장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말이 없어졌다.
아마 그 순간부터 이 일이 자신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걸 실감했을 것이다.
그날 우리는 옥상 끝단에서 실제 오수 연결 가능 지점까지 다시 시선을 길게 뻗어 쳐다 보았다.
지점은 거의 반대편 끝단에 가까웠다.
옥상의 가로 길이는 50미터, 세로 길이는 65미터. 계산해 보니 대각선 최단거리만 약 82미터였다.
하지만 배관은 허공을 직선으로 가로질러 날아가지 않는다.
구조를 피하고, 벽면을 타고, 꺾이며, 구간을 나누어 가야 한다. 실제 시공 구간으로 보면 약 115미터를 봐야 했다.
115미터짜리 오수 라인.
그 숫자는 종이 위에서는 선 하나지만, 현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무게를 가진다.
그 거리를 자연배수로 처리하려면 계속 구배를 만들어야 하고, 중간마다 꺾이는 부분에서 유속을 잃지 않아야 하고, 방수층과 조경과 동선을 모두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거기다 이곳은 옥상이다.
겨울바람은 지상보다 더 빠르게 배관을 식히고, 밤이 오면 낮의 햇기운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 정도 조건이면, 단순히 파이프만 길게 잇는 방식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 자리에서 먼저 “설치”를 말하지 않았다.
대신 “절차”를 먼저 이야기했다.
“이건 그냥 옥상에 박스 하나 올리는 식으로 보면 안 됩니다. 사람이 쓰는 폐쇄형 공간이니까, 기존 사옥을 위한 부속 위생시설로 접근하더라도 인허가 검토부터 먼저 하셔야 합니다. 건축사랑 같이 보셔야 하고, 증축 성격으로 판단될 부분도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구조 검토도 같이 가야 하고요. 우수랑 오수는 처음부터 분리해서 도면을 다시 잡아야 합니다.”
팀장은 이번엔 오래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침묵이 나는 오히려 좋았다.
건축 공사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모두가 너무 쉽게 된다고 믿을 때다.
반대로, 한 번쯤 현장이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어야 오래 가는 판단이 남는다.
그때부터 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는 더 이상 “옥상에 화장실 하나 놓는 일”을 하지 않았다.
대신 기업체 옥상정원을 실제로 운영 가능한 공간으로 완성하는 일을 시작했다.
2026년 1월, 나는 건축사와 함께 인허가 검토에 들어갔다.
이 화장실은 기존 사옥을 위한 부속 위생시설로 볼 수 있는지?, 폐쇄형 모듈이 실질적인 사용 면적을 가지므로 증축 성격으로 보는 것이 안전한지?, 규모상 신고 대상인지 허가 대상인지부터 차근히 정리해 갔다.
동시에 옥상 조경면적과 피난 동선, 구조체 하중, 향후 사용승인까지 염두에 둔 방향으로 도면이 다시 잡혔다.
법적으로 설명 가능한 현장이어야 시간이 지나도 문제없는 현장이 된다.
나는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2월 초가 되자 구조와 설비 방향도 좀 더 구체적으로 잡혔다.
옥상 위에 올라갈 남성용 모듈과 여성용 모듈, 그 안의 위생기구, 급배수 라인, 전기 온수기, 내부 공기 히터, 외부 단열, 사용 하중, 계절별 적설과 풍하중까지 하나씩 다시 짚었다.
작업복 위에 패딩 조끼를 덧입은 채 도면을 펼쳐 놓고 있으면 손등이 늘 차가웠다.
하지만 겨울에 도면 검토는 오히려 좋다. 추운 계절의 현장은 말을 적게 하고, 필요한 판단만 남긴다.
그리고 2월 중순, 프로젝트의 시간은 두 갈래로 나뉘어 흐르기 시작했다.
한쪽 육상 작업장 안에서 화장실 모듈 제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아직 화장실 구조물도 올라가지 않은 옥상 끝단 현장에서 먼저 배관 계통 시공과 급수 라인 작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 두 현장을 번갈아 오가며 감독하면서 일했다.
마치 아직 만나지 않은 두 퍼즐 조각이 결국 같은 날, 같은 위치에서 오차 없이 맞물리도록 시간을 조율하는 사람처럼.
아침 일찍 옥상에 올라가면 데크 표면에는 밤새 식은 냉기가 남아 있었고, 금속 난간은 맨손으로 잡기 어려울 만큼 차가웠다.
시공 작업자들은 작업복 지퍼를 목까지 올린 채 공구 상자를 열었다.
스패너와 파이프 컷터, 드릴 비트가 부딪히는 소리가 차가운 공기 속에서 유난히 또렷하게 울렸다. 아직 화장실은 육상 작업장에서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지만, 옥상에서는 이미 그 모듈을 받아낼 보이지 않는 혈관을 먼저 만드는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벽면에 분필로 그어지는 라인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배수 파이프 라인이 지나갈 자리, 급수 라인이 들어올 구간, 벽면 브라켓이 고정될 위치, 꺾임이 생기는 자리, 유지보수를 위해 손이 닿아야 할 간격까지. 아직 화장실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날 옥상에는 이미 화장실의 그림자가 먼저 놓이고 있었다.
드릴이 벽면에 고정점 자리를 뚫고 들어갈 때 생기는 진동, 브라켓을 하나씩 밀착시키며 조일 때 금속이 내는 둔탁한 울림, 파이프를 절단할 때 나는 짧고 건조한 마찰음이 차가운 하늘 아래 겹쳐졌다.
누군가는 수평계를 눈높이까지 들고 기포를 확인했고, 누군가는 무릎을 꿇은 채 급수 라인이 꺾이는 반경을 다시 계산했다. 장갑을 낀 손등 위에는 회색 분진이 쌓였고, 작업화 밑창에는 잘린 배관 조각과 단열재 부스러기가 바람에 밀려 모였다 흩어졌다.
특히 급수 라인은 단순히 물만 들어오면 되는 정도로 보지 않았다.
옥상은 겨울을 정면으로 맞는 자리이기 때문에, 물이 흐를 수 있다는 사실보다 얼지 않고 버틸 수 있는가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라인을 잡는 순간부터 우리는 보온과 유지관리를 함께 생각했다.
괜히 짧아 보이려고 무리하게 숨기지 않았고, 반대로 유지보수가 어려울 만큼 무식하게 묻지도 않았다. 손이 닿아야 할 곳은 닿아야 했고, 감싸야 할 곳은 제대로 감싸야 했다.
그 무렵 육상 작업장 안에서는 화장실 모듈의 뼈대가 점점 형상을 갖춰가고 있었다.
남성용 모듈에는 양변기 2개, 소변기 1개, 세면기 1개,
여성용 모듈에는 양변기 3개, 세면기 1개가 자리 잡았다.
금속 프레임을 절단할 때 날아오른 미세한 쇳가루 냄새, 단열재를 재단할 때 퍼지는 건조한 분진, 실리콘이 마르며 내는 약한 화학 냄새가 창고 안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작업자들의 손은 모두 거칠었다. 누군가는 줄자를 입에 물고 있었고, 누군가는 무릎을 꿇은 채 세면기 높이를 다시 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장갑 낀 손으로 단열재 끝을 반듯하게 눌러 정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신경 쓴 것은 기구의 숫자보다 겨울철 사용성이었다.
옥상은 한겨울의 공기를 그대로 맞는 자리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양변기와 세면기만 넣지 않았다.
전기 온수기를 반영했고, 실내 공기가 과하게 식지 않도록 공기 히터 열원을 내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트렌치 봉수 동파 방지까지 세심하게 잡았다.
봉수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봉수 하나가 냄새를 막고, 동파를 막고, 결국 현장을 살린다.
그런 것들은 사진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계절을 한 번 지나고 나면 차이가 분명해진다.
나는 2월 말부터 거의 습관처럼 현장과 창고를 번갈아 다녔다.
오전에는 옥상에서 브라켓 간격과 배관 레벨을 다시 확인하고, 오후에는 육상 작업장으로 이동하여 모듈 하부 배수 포인트와 연결할 오수펌프 및 급수 인입 위치를 점검했다.
줄자 끝을 파이프 끝단에 걸고 몸을 숙여 눈금을 읽을 때면, 두 개의 다른 계절을 오가는 느낌이 들었다. 육상 작업장 안은 금속과 목재, 실리콘과 먼지의 냄새로 웅성거렸고, 옥상은 바람과 햇빛과 콘크리트의 냉기로 맑고 차갑게 비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두 공간은 같은 프로젝트 안에서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3월에 들어서자 옥상의 배관 계통은 점점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분필선과 절단된 자재들뿐이던 공간이, 어느 순간부터는 명확한 방향을 가진 라인 시스템처럼 보였다.
벽면 브라켓은 리듬감 있게 이어졌고, 급수 라인은 필요한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를 준비를 마쳤으며, 배수 라인은 아직 올라오지 않은 모듈을 기다리며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자주 생각했다.
4월에 크레인을 이용하여 올라갈 두 개의 화장실 모듈은 사실 그날 처음 옥상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2월 중순부터 먼저 깔려 있던 배관과 급수 라인 위로 예정된 자리로 돌아오는 것에 가깝다고.
4월 초, 마침내 두 개의 모듈이 출고 준비를 마쳤다.
도어의 수직은 반듯했고, 위생기구는 흔들림 없이 자리 잡았으며, 내부 배관과 열원 장치는 우리가 의도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날 아침, 모듈 표면을 마지막으로 닦아내던 작업자의 손등 위로 햇빛이 얇게 번지고 있었다.
검은 작업화 앞코에는 작은 흙먼지가 묻어 있었고, 고정 볼트를 한 번 더 조이던 손가락 관절은 붉게 굳어 있었다.
현장은 결국 이런 작업자의 손들로 완성된다.
크레인 반입 날은 유난히 하늘이 맑았다.
먼저 남성용 모듈이 떠올랐다.
와이어에 매달린 구조물이 천천히 지면을 떠나는 순간, 아래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위로 올라갔다.
도심 건물 외벽을 따라 상승하는 그 직선적인 움직임은 늘 비현실적이다.
사람의 가장 일상적인 공간이 가장 비일상적인 방식으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장면.
여성용 모듈도 그 뒤를 따랐다.
옥상 위에서 유도하던 작업자의 무릎은 이미 콘크리트 가루로 희끗했고, 장갑 끝은 단열재 섬유를 문지르며 거칠어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작업복 깃이 떨렸지만, 누구도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큰 작업일수록 사람은 오히려 더 낮은 목소리로 움직인다.
두 개의 모듈이 옥상 끝단 모서리에 차례로 안착한 뒤, 우리는 연결 작업에 들어갔다.
오수는 처음 계획대로 우수와 분리해 별도로 잡았고, 우수관은 건드리지 않았다.
옥상 외벽을 따라 정리된 50mm 파이프는 브라켓에 일정한 간격으로 고정되었다.
그 위를 감싼 것은 두툼한 3중 단열 마감재였다.
작업자가 벽에 몸을 반쯤 붙인 채 브라켓 수평을 맞추고, 다른 작업자가 아래에서 재단해 올린 단열재를 감싸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칼날이 단열재 표면을 지나갈 때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 접착면을 장갑 낀 손바닥으로 눌러 밀착시킬 때의 둔탁한 감촉, 마지막에 테이핑이 팽팽하게 감기며 반듯한 선을 만드는 장면까지.
오전 햇빛이 옥상 가장자리를 비스듬히 타고 내려오자, 그 단열 마감재 표면은 잔잔한 은빛을 띠며 반짝였다.
거칠게 번쩍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잘 다듬어진 갑옷 표면처럼 조용하게 빛을 밀어냈다.
브라켓이 일정한 간격으로 벽면을 붙잡고 있는 모습도 믿음직스러웠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도록, 계절이 바뀌어도 쉽게 벌어지지 않도록, 하나하나의 고정점이 말없이 자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설치가 다 끝난 뒤에도 나는 바로 내려가지 않았다.
늘 그렇듯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물소리이었다.
양변기 앞에 서서 나는 잠시 조용히 숨을 골랐다.
시공자에게 물을 한 번 내리는 일은 일상적인 동작이 아니라, 배관 전체가 정답을 내놓는 시간이다.
버튼을 누르자 탱크 안에서 물이 한 번 낮게 흔들리고, 곧 힘 있게 쏟아져 나왔다.
하얀 도기 안쪽을 휘감던 물은 짧은 회오리를 만들고, 이내 배수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곧바로 청음봉을 꺼냈다.
옥상에서 시작된 오수 라인은 중간 구배를 따라 이동하며, 최종 나가는 출구 쪽으로 꺾여 내려가는 구간이 모두 여덟 군데였다.
나는 그 여덟 군데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확인하기로 했다.
첫 번째 구간에 청음봉 끝을 대고 귀를 기울였다.
아주 얇고 분명한 흐름음이 전해졌다.
좋았다.
두 번째 구간.
물은 관 벽을 따라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나는 마치 배관의 맥박을 짚는 사람처럼 하나씩 듣고 있었다.
어디서는 물이 얇은 막을 이루며 쓸리고, 어디서는 방향을 바꾸며 낮은 음으로 “후욱” 하고 내려갔다.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공자는 그 리듬으로 안다.
이 배수 물길이 살아 있는지, 아니면 어디선가 망설이고 있는지를.
여섯 번째 구간에서는 잠시 숨을 죽였다.
가장 민감한 자리였다.
경사가 길게 이어진 뒤 꺾이는 곳은 늘 유속이 흔들리기 쉽다.
하지만 청음봉 너머로 전해진 소리는 깨끗했다.
고여 웅얼거리는 둔탁한 소리가 아니라, 방향을 바꾸면서도 힘을 잃지 않는 단단한 흐름의 소리였다.
일곱 번째.
여덟 번째.
마지막 확인을 마치고 나서야 어깨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양변기에서 내려간 물은 우리가 계산한 배관 경사를 타고, 우리가 준비한 경로를 따라, 끝까지 제 갈 길을 잃지 않고 흘러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냥 물이 잘 내려간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게는 그 소리가 수개월 동안 쌓인 판단과 제작과 검토가 틀리지 않았다는 조용한 증명이었다.
나는 청음봉을 천천히 접고 다시 외벽 쪽을 바라보았다.
브라켓에 단단히 고정된 50mm 배수 파이프.
햇빛 아래에서 잔잔하게 반짝이는 두꺼운 3중 단열 마감재.
그 안쪽으로는 우리가 살려낸 물길이 계절을 향해 묵묵히 준비되어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우리가 만든 것이 단순한 화장실이 아니라 계절을 견디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봄에는 무심히 쓰이고, 여름에는 문제없이 흘러가고, 가을에는 조용히 버티고, 겨울에는 얼지 않게 막아주는 것.
좋은 설비란 원래 그렇게 존재감 없이 오래 버틴다.
돌아가기 전, 나는 옥상정원을 한 번 더 천천히 둘러보았다.
작년 겨울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 옥상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름다움만으로는 사람을 붙잡아둘 수 없었다.
사람을 머무르게 만드는 것은 결국 불편이 없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불편을 없애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아주 작은 것들에서 시작된다.
우수와 오수를 구분하는 판단 하나.
장거리 오수 이송을 풀어내는 계획 하나.
건축사 인허가를 먼저 검토하는 절차 하나.
2월 중순부터 먼저 깔려 올라간 배관과 급수 라인 하나.
겨울을 대비한 전기 온수기와 내부 공기 히터 하나.
그리고 여덟 번의 꺾임을 끝까지 따라간 배수관 물소리 하나.
돌아보면 이 프로젝트는 단지 화장실을 설치한 일이 아니었다.
2025년 12월 첫 상담,
2026년 1월 인허가와 구조·법적 검토,
2월 중순부터 옥상 배관·급수 라인 선시공과 육상 창고 모듈 제작 병행,
3월 제작과 계통 정밀 조정,
4월 크레인 상부 반입과 최종 완성까지,
정확히 4개월이 걸렸다.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을 길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간 하나가 법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계절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서려면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하다.
그날 옥상을 내려오면서 나는 뒤를 한 번 돌아봤다.
도시 위 작은 정원 끝단에 남성용 화장실모듈과 여성용 화장실모듈이 단정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빛나는 알루미늄 단열 배관이 벽을 따라 이어져 있었고, 바람은 식재 사이를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중에 이 공간을 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옥상에 화장실까지 있어서 좋다.”
아마 그 말이면 충분하다.
시공이란 원래, 다 끝난 뒤에는 아주 당연해 보여야 성공한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당연함이 그냥 생기지 않았다는 걸.
작년 겨울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된 일이,
건축사의 검토와 마이펌프의 판단, 겨울 옥상 내벽에 새겨진 분필선과 차가운 금속 브라켓, 육상 작업장 안의 쇳가루 냄새와 작업자들의 거친 손, 크레인의 와이어, 청음봉 끝으로 들려오던 물소리를 지나,
마침내 도시의 가장 높은 정원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런 일을 좋아한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물이 잘 내려가는 화장실일지 몰라도,
내게는 그것이 공간의 역할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한 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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